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 7대 고도 (문단 편집) === [[카이펑시]] (개봉)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카이펑시)] [[오대십국시대]]~[[북송]]의 수도이자 중국 중세사의 중심지. 잠시 [[금나라]]의 수도이기도 했다. 옛 이름은 대량, 변, 변량, 변경으로도 불렸다. 세간의 명칭은 그러했지만 정식 이름은 송나라 때에도 개봉 즉 카이펑이었고 마치 우리의 서울특별시처럼 북송 당시의 공식 명칭은 동경 개봉부였다. 주요 도시를 마치 지금 중국의 4 직할시처럼 지정했던 송, 요, 금, 발해의 5경제를 반영한 명칭이다.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오프닝 곡에서 "카이펑 여우거 빠오칭티엔"이란 가사가 고증 오류가 아님을 알려준다. 몰락과 중흥을 자주 반복했다. 원래 [[춘추전국시대]] [[전국칠웅]] 중 하나인 [[위나라]]의 수도였다. 이후 [[진시황]]의 초토화 명령 때문에 몰락했다. 그렇게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 천 년이 흘러 [[수나라]] 때 다시 복구된다. [[당나라]]를 멸망시킨 [[주전충]]의 봉지가 이곳이었기 때문에 주전충은 후량의 수도를 카이펑으로 잡았다(동도개봉부). 이후 후당 시대에 잠시 낙양이 수도가 되었으나 다시 카이펑이 수도가 되었고, 이는 [[북송]]까지 이어진다. 특히 북송 시절에는 [[불야성]]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구 백만을 넘긴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스로서 번영했다. 그러나 북송이 [[정강의 변]]으로 멸망하면서 그 지위를 상실하며 쇠퇴기를 맞이한다. 금나라 멸망 직전에 몽골의 침입을 피해 아예 베이징과 그 이북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천도하며 약 20년 간 금나라의 수도가 되었다. 금나라 멸망 이후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되며 쇠퇴해 현재에 이른다. 지리적으로는 [[장강]]과 [[황하]]를 잇는 대운하 남부 구간의 북쪽 종점이고, [[황하]]에서 [[베이징]]까지 이어지는 대운하 북부 구간의 출발점이라는 위치를 지닌다. 광활한 평야라 방어에 취약점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될만큼 도시가 번창한 건 이 때문. 또한 고대사의 중심지인 시안/뤄양과 근세 이후의 중심지인 베이징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이를 두고 관중에서 화북으로의 이동하는 과도기로 카이펑 시기를 바라보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